소득 수준에 따라 연간 의료비 본인부담금 상한을 정하고 초과분을 돌려주는 ‘본인부담상한제’의 환급금 지급이 늦어지면서 저소득층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환급 대상자의 4분의 3이 소득 하위 30%에 해당하는 데다, 지급이 결정되고도 환급금을 받지 못한 사람이 수십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 서영석 의원(경기 부천시갑)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진료분 본인부담상한제 환급 대상은 226만 명, 환급금은 총 2조 8,915억 원이었다.
이 가운데 소득 하위 10%인 1분위는 87만 명으로 전체 환급 대상자의 38.6%를 차지했으며, 환급금은 1조 552억 원에 달했다. 소득 하위 30%인 1~3분위까지 포함하면 환급 대상자의 약 75%가 저소득층에 집중됐다.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가 정작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계층에 더욱 절실한 상황인 셈이다.
문제는 환급 시기다. 본인부담상한제는 개인별 연간 상한액이 확정된 뒤 다음 해 8월부터 환급이 이뤄진다. 이에 따라 2025년 1월에 부담한 병원비를 2026년 8월에야 돌려받을 수 있어 진료 시점에 따라 최대 1년 7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당장 생활비와 의료비를 마련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에는 환급 지연 자체가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지급이 결정된 환급금조차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26년 9월 말 기준 2025년 결정분 미수령자는 16만 2,420명으로 집계됐다. 2024년 결정분도 10만 3,999명, 2023년 결정분은 5만 5,770명이 아직 환급금을 받지 못했다. 2025년 결정분 미수령자의 75%는 소득 하위 30%였으며, 100만 원 이상을 받지 못한 사람도 4만 2,000명에 달했다.
환급 지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사전 지급 제도의 제한이다. 건강보험공단은 상한액이 확정되기 전에 환급금을 지급하면 추후 초과 지급액을 돌려받아야 하는 이른바 ‘환입’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저소득층에 대한 조기 지급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 현재는 연간 1,096만 원을 초과하는 최고상한 초과자에 대한 월별 지급과 동일 요양기관에서 843만 원을 초과한 경우의 사전급여 등이 운영되고 있다.
소득에 따른 지급 방식의 차이도 나타났다. 2025년 진료분 환급금 중 사전급여 비중은 소득 1분위에서 2.2%에 그친 반면, 소득 10분위에서는 43.3%였다. 소득이 높은 계층일수록 환급금이 병원 단계에서 미리 정산되는 비중이 컸다는 의미다.
자동 환급 체계도 충분하지 않다. 환급금을 별도 신청 없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지급동의계좌 등록률은 2025년 기준 58.0%에 머물렀다. 나머지 상당수는 안내문을 받은 뒤 직접 신청해야 한다. 고령자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환급 절차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
서영석 의원은 “본인부담상한제는 아플 때 가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만든 제도인데, 환급 대상 대부분인 저소득층이 최대 1년 7개월을 기다리고 있다”며 “공단이 분위별 환입 규모를 제시하지 않은 채 환입 우려만으로 모두의 지급을 늦추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1~3분위부터 잠정 금액으로 먼저 지급하고 나중에 정산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기초연금·의료급여 등 정부가 이미 알고 있는 계좌와 연동해 자동 지급을 늘려야 한다”며 “미지급자들이 소멸시효 3년을 넘기기 전에 모두 환급받을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인부담상한제는 과도한 의료비로 인한 가계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기 위한 사회안전망이다. 제도가 취지에 맞게 작동하려면 환급 대상과 금액을 산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필요한 시기에 실제로 돈이 지급되도록 해야 한다. 저소득층에 대한 조기 지급과 자동 환급 확대, 장기 미수령자에 대한 적극적인 안내를 통해 의료비 부담 완화라는 제도의 목적을 실질적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