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약을 10종 이상 복용하는 만성질환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약물 중복과 부적절한 복용을 예방하기 위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다제약물 관리사업 참여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고령층의 약물 관리 필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사업 확대와 제도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 서영석 의원(경기 부천시갑)이 10월 15일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처방약을 10종 이상 복용한 만성질환자는 143만 8,981명이었지만 다제약물 관리사업 참여자는 1만 1,613명으로 전체의 0.8%에 그쳤다.
특히 85세 이상 초고령층의 다제약물 복용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처방약을 10종 이상 복용하는 85세 이상 만성질환자는 2020년 10만 7,551명에서 2025년 23만 7,611명으로 5년 만에 약 2.2배 증가했다. 고령층의 약물 관리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실제 관리사업의 혜택을 받는 환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한 셈이다.
전체 다제약물 복용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처방약을 5종 이상 복용하는 만성질환자는 2020년 484만 417명에서 2025년 653만 1,224명으로 34.9% 증가했다. 10종 이상 복용자는 같은 기간 93만 2,731명에서 143만 8,981명으로 54.3% 늘었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은 118만 2,072명으로 전체의 82.1%를 차지했다.
질환별로는 당뇨병 환자 중 10종 이상 복용자가 53만 8,886명, 고혈압 환자는 49만 9,875명으로 집계됐다. 치매 환자 중 10종 이상 복용자도 21만 5,402명으로, 5년 사이 81.9% 증가했다. 여러 만성질환을 함께 앓는 고령층이 늘면서 약물 간 상호작용과 중복 처방, 부적절한 복용에 대한 관리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다제약물 관리사업은 여러 약을 복용하는 환자의 약물 목록을 점검해 중복·부적절한 약물 사용을 줄이고 안전한 복용을 지원하는 제도다. 지역사회 모형에서는 약사가 환자의 복용약을 점검·상담하고, 필요한 경우 의료진과 연계해 약물 조정을 지원한다. 병원과 장기요양시설에서도 관련 관리사업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사업 실적은 수요 증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18년부터 올해 7월까지 누적 참여자는 5만 2,319명에 그쳤다. 사업이 장기간 운영됐음에도 다제약물 복용자 전반으로 관리 서비스가 충분히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예산 확대도 과제다. 2025년 사업 예산은 16억 5,000만 원이었으나 실제 집행액은 17억 3,000만 원에 달했다. 반면 올해 예산은 16억 4,000만 원으로, 전년도 실제 집행액보다 적게 편성됐다. 관리 대상자가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사업 확대를 뒷받침할 재정 기반은 충분하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업 효과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수행한 2022년 연구용역 「다제약물 관리사업 제도화 방안 마련」에 따르면, 사업 참여자는 미참여자보다 3개월 뒤 응급실 이용 횟수가 지역사회 모형에서 23%, 병원 모형에서 33% 감소했다. 65세 이상에서는 감소폭이 각각 27%, 37%로 나타났다. 병원 모형 참여자 2,188명 가운데 676명(30.9%)은 약물 조정을 받았으며, 이 중 418명은 복용약 수가 줄었다.
서영석 의원은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고령층의 다제약물 복용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정작 이를 관리하는 사업은 9년째 시범사업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응급실 이용 감소 등 긍정적인 연구 결과가 확인된 만큼 전국 시행에 들어간 통합돌봄과 연계해 지역 약사와 의료진이 어르신의 복용약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본사업 전환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고령사회에서는 단순히 의료 이용을 늘리는 것뿐 아니라 이미 처방받은 약을 안전하게 복용하도록 돕는 관리체계도 중요하다. 다제약물 관리사업을 지역사회 통합돌봄과 연계하고, 전문 인력과 예산을 확충해 더 많은 환자가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