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뉴스는 약 10회에 걸쳐 돌고래(필명)님이 기고한 “나는 삼식이다”를 연재합니다. 이번은 세 번째 연재글입니다. 글쓴이는 최근 은퇴 아닌 ‘명예퇴직자’가 된 베이비부머 세대 중 한 사람입니다. 명예퇴직 후 10개월간 ‘삼식이(하루 꼬박꼬박 세끼 전부를 집에서 먹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로 살면서도 남들과 ‘남다른’ 활동을 해왔다고 자부하는데요, 바로 자원봉사와 취미활동을 비롯해 가족과의 시간 갖기, 나만의 여행 등의 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시간을 꾸려왔습니다. 따라서 이번 연재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같은 상황에 처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편집자 주>

<이어서 계속>이상하리만큼 그 밤은 잠을 잘 잤다. 아무런 꿈도 꾸지않고서 말이다. 정말로 신기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회사에서 잘렸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는 한강 다리 위를 걸었느니, 약국을 서성거렸느니 하는데 말이다. 아마도 우리가 예전에 IMF시절의 경제 위기를 경험하고 나니 그 후에 미국 발 서브프라임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우리가 잘 견디어 낸 것 처럼 평소에 같이 다니던 직장 동료들과 명퇴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했고 옆에서도 많은 같은 경우를 보아와서 그렇지 않았나 한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기특하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슬기롭게 앞으로 닥쳐올 문제를 잘 풀어 나갈 것 같은 기분은 들었다. 그러나 명퇴 후 3개월의 나의실상은 어렵고 실망하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에다가 대면하는 것마다 새로운 것들이라서 쉽지만은 않았음을 밝혀둔다.

따라서 이 기특한 기분은 한 순간이었고, 큰 오산이었다. 명퇴 서류에 어제 서명을 하였으니 엄밀히 말하면 내가 어제 다니던 회사는 오늘은 내 직장이 아니라는 생각에 미치자 어떻게 오늘 회사에 나가서 남아 있는 짐을 정리할지, 남아 있는 직장 동료 들과 인사를 하고 나올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그때부터 착잡함이 밀려 오고, 어떤 얼굴로 회사 사람들을 대할 수 있을까 이미 소문이 쫙 깔렸을텐데 하는 생각, 또 내가 오늘은 임시 숙소였던 오피스텔이 아닌 집으로 가야 하는데 어떻게 아내와 딸에 얼굴을 볼 것이며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는지 생각에 이르자 머리 속은 금새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고 어지러울 뿐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짐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출근(?)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냥 회사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날은 정말로 회사 동료들이 내 등뒤에서 나를보고 모두들 수근 대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나와 같이 했던 동료들은 먼저 와서 격려를 하여 주고 위로도 하여주고 때론 전화로 안부를 물어주는 부하 직원들을 볼 때, '아! 내가 그리 나쁘지 않게 회사 생활을 하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가끔 내게 전화를 하여 안부를 물어주는 직장 동료와 부하직원들에게 감사하다.

이러한 행동은 본의 아니게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것이니 만일 주위에 이와같은 일이 벌어지거나 있다면 바로 가서 얼굴도 보고, 가끔 안부 전화도 하여 준다면 나중에 내가 동일한 일로 사회에 나갔을 때 좋은 또 다른 사회의 네트워크가 될 것이다(이 네트워크는 퇴직이나 전업이나 명퇴 시 꼭 필요한 것이다. 이 문제는 다른 장에서 더 많은 나의 사례로 이야기 하려 한다).

어찌되었거나 내가 사용하던 회사차량으로 수 차례 회사를 오가면서 나의 개인 짐을 일차적으로 회사 앞에 있는 오피스텔에 옮길 수가 있었으며, 또한 총무부서의 배려로 내가 타던 차량을 수일 간 더 이용하게 함으로써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번 기회를 빌어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오후에는 공장의 직원들에게 일일이 작별인사를 하러 다녔고 나의 명퇴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일부 인원들은 내 일을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일부는 모르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는 순간 멍한 얼굴을 하는 직원들도 있었고 분노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어찌 되었거나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과 하나하나 만나서 인사도 하고, 본사의 중역들에게도 전화로 인사를 한 후에 좀 일찍 회사를 나왔다.

나중에 생각을 하니 이와 같이 한 일은 잘 한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회사에 남아 있는 임직원들이 나를 해고한 것이 아니고 회사가 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나와 같은 일을 당한다면 가급적 같이 지냈던 모든 사람들과 인사는 하고 나오라고 충고를 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들이 나를 도와줄 새로운 사회 생활의 “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별 인사를 할 때는 절대로 회사를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왜? 남아 있는 사람들이 다니는 회사이며 생활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어느 사람이 내 집에 방문하였다가 나가면서 안 좋은 이야기를 한다면 어느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날 저녁은 집으로 퇴근했다. 정확히 말해서 집으로 이동을 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집에 들어서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잘 다니던 회사에서 잘리고서 이를 집에 알릴 수 없는 아버지들이 하는 일이 아침에 나갈 때는 양복을 입고 나갔다가 등산복으로 갈아 입고 산에 올라 갔다가 다시 양복으로 갈아 입고 집으로 돌아가는 가장들이 있다는 것을 언론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무심코 지나치며 그럴 수 있겠다고 만 생각했지 내가 그런 처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막상 내가 명퇴를 하고 보니 이해가 간다.

집에 들어서자 모든 것은 예전과 다른 것은 없었다. 키우고 있는 강아지(이름이 '제비'임) 도 마찬가지고 반겨주고 모든 것이 마찬가지지만 어딘지 모르게 무거운 기분이 느껴졌지만, 한 순간 바뀔 수가 있었다. 그것은 쿨(cool)한 내 딸의 한 마디였다. “아빠 그 동안 일을 하느라고 너무 수고 많이 했어, 이제는 좀 쉬어도 되” 이 말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때의 생각을 하니 코 끝이 찡하다. 이런 것이 가족의 사랑일 것이다.

예전과 같이, 같은 식탁에서 전에 먹던 것을 먹고 식구들과 이야기 하면서 느낀 것은 바뀐 것은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것이 가족의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여 보며, 모든 아내에게 그리고 자식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명퇴한 아빠들에게는 전처럼 그대로 대하여 주는 것이 힘이 되고 울타리가 될 수 있었음을……..

이것이 내가 생각하기에는 제일 좋은 위로가 아니겠나 생각한다 그러나 혹 다른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여도 좋을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명퇴한 아빠들에게 힘이 되는 것은 따듯한 말 한마디 일 것이다. 내일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내일 먹을 것, 입을 것이 없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가장에게는 제일 힘이 되는 것이 가족의 사랑이다. 그리고 아버지들에게 제일 많이 심금을 울리는 노래가 두 개가 있지 않은가 하나는 “어머님의 은혜”와 “아빠 힘내세요”라는 동요가 아니겠는가. 명퇴한 아빠들이여 힘을 내자. 파이팅!

다음 장 부터는 백수 생활을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풀어 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