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1,400만 명이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최고 광역지자체 경기도. 그러나 행정 지도 위 공공의료 인프라의 배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대한 정책적 공백과 직면하게 된다.
현재 경기도가 직접 운영하는 경기도의료원 산하 공공병원은 수원, 의정부, 파주, 이천, 안성, 포천 등 총 6곳이다. 외견상으로는 경기 남부와 북부에 3곳씩 균형 있게 안배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부천, 시흥, 김포, 광명 등 인구가 밀집한 경기 서부권에는 경기도의료원 소속 병원이 단 한 곳도 없다.
이는 단순한 행정 구역 배치의 불균형을 넘어, 거주 지역에 따라 도민의 기본권인 생명권과 건강권이 차별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심각한 '의료 형평성'의 문제다.
수원병원(167병상), 의정부병원(203병상), 파주병원(200병상), 이천병원(206병상), 안성병원(249병상), 포천병원(172병상) 등 기존 6개 경기도의료원 병원들은 총 1,100여 개가 넘는 병상과 약 500병상에 달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운영하며 각 지역의 필수·응급 의료와 취약계층 진료를 묵묵히 지탱해 왔다.
그런데도 남양주 등 경기 동남북 일부 지역에서는 경기도립 공공병원 건립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반면 부천에서는 시민사회 단체들이 광역 차원이 아닌, 자체 감당이 어려운 기초자치단체에 의료원 설립을 요구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왜 부천, 시흥, 김포, 광명 등 경기 서부권 주민들은 이러한 광역 차원의 공공의료 안전망에서 철저히 소외되어야 하는가. 일각에서는 경기 서부권이 서울 및 인천과 인접해 있고 대형 민간 의료기관이 풍부하다는 이유로 공공병원의 필요성을 낮게 평가하곤 한다. 수도권 특유의 민간 의료 인프라 착시 현상이 공공의료의 공백을 정당화하는 핑계로 작용해 온 셈이다.
그러나 민간병원과 공공병원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엄연히 다르다.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민간병원은 수익성이 낮거나 적자가 발생하는 필수의료, 응급 및 중증 외상 분야를 폭넓게 담당하기 어렵다.
반면 공공병원은 수익성과 상관없이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는 필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령층과 취약계층을 위한 돌봄 의료, 그리고 감염병과 재난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최전선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 역할을 맡는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공공의료 부재가 가져온 비극을 똑똑히 목도했다. 대대적인 감염병 위기가 닥쳤을 때, 공공병원이 없는 부천과 서부권 주민들은 지역 내에서 격리 및 치료 병상을 구하지 못해 타 지역 의료기관을 전전해야 했다. 평상시에는 적자 타령과 민간병원 유무를 핑계로 공공병원의 필요성을 외면하다가, 국가적 위기가 터져서야 공공병원을 찾는 무책임한 행정 모순은 더 이상 반복되어선 안 된다.
비단 감염병뿐만 아니다. 급격한 고령화와 만성질환의 증가, 필수 돌봄 의료 수요의 확대를 고려할 때, 경기 서부권의 공공의료 기반은 향후 지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할 핵심 요소다.
지역 현장에서는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부천시 등 기초지자체 차원에서 시립 공공병원 설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속해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공공병원의 신설과 운영은 기초지자체 단독으로 감당하기에 거대한 재정적 장벽이 존재한다. 초기 부지 매입과 병원 건립 비용은 차치하더라도, 의료진 확보와 첨단 장비 구축, 그리고 매년 발생하는 구조적인 운영 적자를 보전하는 일은 지자체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준다. 부천시나 시흥시 같은 기초지자체가 독자적으로 대규모 공공병원을 세우고 안정적으로 운영하기에는 현실적인 재정 한계가 명확하다.
따라서 경기 서부권의 공공의료 확충 문제는 기초지자체에 짐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경기도 전체의 의료 균형발전과 공공 안전망 구축이라는 광역 차원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경기도는 도민 전체의 삶의 질과 생명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최상위 광역지자체다.
경기도가 경기 동북부 지역의 의료격차 해소를 위해 동북부 공공의료원 설립을 추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구 밀집도와 응급·필수의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경기 서부권 역시 객관적인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공공병원 확충을 적극 검토해야 마땅하다.
경기도의 공공의료 지도는 기존의 '북부 3곳, 남부 3곳'이라는 과거의 틀에 계속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인구 이동과 도시 구조 변화로 공공의료 수요가 급증한 서부권으로 그 안전망을 즉시 확장해야 한다. 경기도는 부천, 시흥, 김포 등 서부권 전체를 아우르는 응급·필수의료 접근성 실태 조사를 즉각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경기도의료원 서부 분원 건립이나 서부권 특화 공공병원 신설 등 구체적인 중장기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공공의료는 정치적 선심성 공약이 아니며, 적자와 흑자라는 단순한 재무제표로 가치를 환산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도민이 어디에 살든 위급한 순간에 차별 없이 필요한 골든타임 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자 기본권이다.
"어디에 사는가"가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결정짓는 불평등을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경기도가 경기 서부권의 공공의료 공백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모든 도민을 포괄하는 정의로운 공공의료 지도를 새로 써 내려가길 강력히 촉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