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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6/10/11  강진서 기자
[강 기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솔직한, 제주도 한 달 여행기 (完)

627(28일째) [제주 민속 오일장]

 

 비가 축축하게 쏟아지는 날. 오랜만에 민속 오일장에 다시 갔다. 딱히 입맛을 다시며 간 건 아니었고, 화장실 변기가 막혀서 별의별 짓 다하다가 극약 처방으로 관통기를 사러 갔다. 끼니 때우기는 덤이었지만, 나중에 가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관통기가 덤이 돼버렸다. 이모가 설명해주는 오일장은 내가 왔을 때의 오일장과는 또 달라서 이미 봤던 것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래서 '알고 보면' 이라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 홍합탕을 푸고 있는 광주식당 아저씨

 

먹을 게 없다고 한 건 취소. 애초에 시장에 먹을 게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 튀김, 호떡, 왕 떡볶이(가래떡을 통째로 넣어 만든 떡볶이) 등등 각각 유명한 집이 다르다. 구석구석 찾아다니다 보면 유명한 집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음식점 중에서는 광주식당과 (이전에 갔던) 춘향이네가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광주식당은 그 명성에 걸맞게 가게 바깥까지 줄줄이 줄을 서 있었다. (메뉴에 가격은 안 나와 있다. 비뚤어지지 않아도 바가지 쓰라는 의도가 다분한 거로 밖에 해석이 안 되는 메뉴판이다) 광주식당에서 메추리, 해물파전, 섞어 국밥, 홍합탕(서비스), 양념게장은 밑반찬, 무뼈닭발에 막걸리 3병을 시켜서 5명이 먹었다. 메추리와 홍합탕이 맛있더라. 홍합탕은 시원시원하니 계속 수저가 가고, 메추리는 쫄깃쫄깃하다. (닭발은 역시 뼈있는 게 맛있다) 없는 게 없는 것 같은 오일장에서도 관통기는 팔지 않더라. 결국, 돌아오는 길에 철물점에 들러 샀다.

 

*28일째 참고. 뭐든지 잘 아는 사람과 함께 가면 다르게 보인다. 유명한 곳을 가도 유명한 음식을 먹어야 맛있다. (ex. 춘향이네)

 

 

 

628(29일째) [빠빠라기]

 

▲ 빠빠라기의 옛날 팥빙수

 

 시청 근처에 유명한 빙수집이 많다길래 입소문을 듣고 가까운 곳을 하나 골라 찾아간 것이 빠빠라기였다. 지하에 있어 약간 음침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음침하다기보다 축축하고 칙칙한 옛날 다방 느낌이다. 보라색 싸구려 벨벳 느낌의 소파와 세트로 하얀색 식탁이 죽 늘어서 있고 지금은 누렇지만, 이전에는 하얬을 법한 벽지와 보라색 포인트의 조화가 가득한 인상적인 곳이다. 여름철에는 사람이 많아서 토스트도 안되고 동나는 상품이 많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평일인 데다가 이슬비가 내려서 사람이 있을 수가 없었다. 널널하게 떡하니 자리하나 차지하고 앉아 팥빙수(2~4인용, 14,000) 하나를 시켰다. 바나나, , 키위, 수박, 방울토마토 등 온갖 제철 과일 쑤셔 넣고 쑥떡, 콘 옥수수를 섞어 넣고, 그 위에 잔뜩 콘 프로스트를 뿌리면 빠빠라기 팥빙수 완성이다. 2~4인용인 이유를 알겠다. 꾸역꾸역 먹다 보니 속이 시리다. 배도 부르고 망했다.

 

*29일째 참고. 맛집이라고 무조건 믿지 말고 취향 따라가자.

 

 


629-30(30-31일째) [카멜리아 힐 약천사 반 고흐 인사이드 주상절리]

 

카멜리아힐(7,000)은 동백꽃으로 유명한 곳이다. 같이 지내는 스태프에게 카멜리아힐이 유명하다는 말을 들어서 약천사에 가기 전, 여유 있게 카멜리아 힐을 찍고 가기로 했다. 카멜리아힐이 카나리아 같은 귀여운 이름과 비슷하다고 해서 좋은 곳일 것 같다는 고정관념을 가져서는 절대 안 된다(?). '느려도 괜찮아요. 자연은 원래 느려요', ', 오늘만큼은 천천히'와 같이 지쳐있는 사람들을 위한 힐링 어구로 가득한 곳인데 정작 그것을 실천할 수 없는, 특이한 곳이다.

 

▲ 덩그러니 놓여있는 힐링(?) 어구

 

홍보 문구에 나와 있듯이 카멜리아힐은 사진을 찍기 위해 가는 곳이다. , 사진상으로 추억을 남기기 위해 가는, 나중에 떠올려보면 ', 나 거기서 사진 찍었었지.'하는 생각이 드는 추억의 장소다. 앉아서 쉬라고 놓여있는 정자들은 모순적이게도 앉아서 쉴 수 없다. 카메라 렌즈를 보며 찰칵이는 소리에 맞춰 잠깐 궁둥이를 붙였다 떼기 바쁘다. 산책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평일이고 자시고 사람이 너무 많다. 여유있게 볼 수 없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전부 SUV를 타기 때문에 시야가 낮아져 SUV를 구매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와 비슷하다.

 

▲ 사람 반, 수국 반, 카메라 반

 

사진 찍는다고 카메라 앞에 두고 키스하고 자세 잡고 카메라 눈치 보고 난리도 아니다. 사진이 아무리 추억이라지만 쉴 수가 없다. 수국 축제(6-7)가 한창일 때 셔터음도 한창이었다. 본인들을 열심히 찍는 사람들의 모습이 재밌어 그분들을 열심히 찍다가 지쳐서 나왔다.

 

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중문을 지나 뚜벅뚜벅 길을 따라 약천사에 갔다. 12일 휴식형 템플스테이(30,000)를 신청했는데 애초에 홈페이지에서 신청이 되지 않는지 당황하시더니 담당 스님께 안내해주셨다. 결국, 자리에서 스님에게 현찰로 드렸다. 뭔가 삥 뜯기는 기분이었다. 방을 안내해주셨는데 티브이에 와이파이에 현대 문명이 전부 다 모여있었다. 너무 현대적이라 좀 당황할 정도로.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점심은 훨씬 지났고, 저녁이 되기에는 시간이 좀 남아있어서 TV로 드라마를 보다가 주변을 돌았다.

 

▲ 맑은 날 약천사

 

약천사는 크고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절이다. 입구 양옆에는 거대한 돌하르방이 서있고, 길가에는 야자수가 늘어서 있으며, 정자를 지나는 다리 옆 야자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분수 위로 3층짜리 거대한 기와단청이 쌓여있다. 한가운데 있는 대적광전은 너무 위용이 넘쳐 뒤로 돌아 다른 곳을 구경했다. 굴법당에서 굴속에서 선풍기와 함께 계신 부처에게 인사드리고, 삼성각에서 미닫이문을 열고 용왕에게 인사드리고, 천천히 걸어서 돌아가고 있는데 나를 찾는 스님과 우연히 마주쳤다.

 

너무 발이 아파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다가 돌아다니는 나를 찾아 덩달아 돌아다닌 스님한테 "절에서는 단

정히 다녀야 한다"며 혼났다. 옷도 주지도 않고 '단정히'라니. 옷을 못 받았다고 말하려 하니 독심술이라도 하는지 알아서 템플스테이 복이 있는 방으로 안내해주셨다. (거기서도 신발 신고 들어간다고 혼났다..)

 

▲ 굴법당 부처님

 

절에서 종은 알람시계라고 할 수 있다. 예불, 공양, 큰일이 생겼을 때 등등 종을 울리는 것은 정해져 있는데, 아무래도 방문객들에게 가장 중요한 알람은 밥을 먹는 공양 알람이 되겠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주지 스님이 돌아가셔서 맛있는 게 많이 나왔다. 원래 제삿밥이 가장 맛있다고 하지 않던가. 절밥도 제삿밥이 맛있다. 스님이 먹을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먹을 복이 있으니 잘 복이 없나 보다. 제삿날이라 손님들이 많아 2인실 방에서 쫓겨나 6인실 방을 혼자 쓰게 되었다. 6인실의 넓은 방을 혼자 쓰는 것은 널널해 좋다만은 문제가 있다면 화장실이 안에 없다. 와이파이도 안되고 TV도 없다. (되는 게 이상한 건가?) 오로지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책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저녁에는 예불하며 목탁과 염불 소리를 배경 삼아 마음을 고요하게 가다듬고 돌아왔는데 문밖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이 남은 6인실들을 훑어보더니 도저히 지내지 못하겠던지 야반도주했다.

 

*30일째 참고. 제주도는 가는 길을 뻔히 아니 지나가는 택시마다 뻔한 목적지를 물으며 기본요금을 제시한다. 약천사에서는 식당 안으로 참새가 밥을 먹으러 들어오고 아주머니가 파닥거리며 참새를 내쫓는 진귀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 안개 낀 약천사


근처에 도시가 없어서 그런지 해가 꽤 빨리졌다. 이른 저녁부터 어두컴컴한 먹구름이 꿉꿉하게 드리워지더니 안개가 꾸역꾸역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전설의 고향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기가 무섭게 천둥, 번개와 더불어 장대 같은 비가 쏟아졌다. 분명 모기가 웽웽거리며 물었는데, 쾅쾅거리는 빗소리에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물론, 새벽 예불(4:30-)을 알리는 종소리도 느낄 수 없었다. 느끼고 싶지도 않았지만.

 

여느 때와 같이 늦은 아침 즈음에 일어나서 꾸물꾸물 기어 나오니 스님이 왜 새벽예불에 나오지 않았냐며 잔소리(?)를 하셨다. 아무래도 어제부터 내 행동거지가 맘에 안 드는 것 같다. 물론 프로페셔널하시기 때문에 맘에 안 드는 것과는 별개로, 친절하게도 함께 템플스테이를 하게 된 단 한 명의 외국인을 소개해주셨다. (사실 어제 점심부터 어색하게 마주치고 있던, 심지어 어설프게 대화도 했던) 플리넬이라는 프랑스인은 하루 먼저와 3일을 더 머물다 간다고 했다. 1년이라는 기간을 잡아 세계 여행을 하며 돌아다니는 플리넬은 벌써 10-20개국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어떤 나라가 가장 좋았냐는 물음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다 좋았다며 능숙하게 말을 돌리는 것을 보니 산전수전 다 겪었나 보다.

 

비가 온 뒤 날씨가 너무 척척해서 안타깝게도 예정에 있던 둘레길 포행은 하지 못했다. 대신 108개의 구슬을 꿰어 염주를 만들고 플리넬이 치고 싶다던 큰 북(법고)를 둥두두둥 친 다음, 밥을 먹었다. 정말 규칙적인 생활이 따로 없다.

 

점심 예불도 주지 스님 돌아가셨다고 외국 스님도 오시고 제사 지내고 난리도 아니었다. 원래 제사를 지낼 때는 평소보다 예불이 길어지는데 염불 외는 스님이 이때 절하는 거라며 눈치를 계속 주셔서 겨우겨우 따라 했다. 계속 앉아있자니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 대적광전 밑 단청

 

예불을 마치고 절밥이 싫다며 초콜릿을 먹고 싶어 하던 플리넬과 절 구경을 했는데 가장 고대하던 어마어마한 위용의 대적광전은 역시 아름다웠다. 금빛으로 빛나는 부처 위로 오색 가지로 칠해진 단청들과 기둥마다 여의주를 물고 매달려 있는 용들, 저 위부터 주루룩 길게 매달려 있는 연꽃의 향연은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대적광전의 가장 대단한 점은 층마다 와이파이가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역시.

 

초콜릿을 사러 간 플리넬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문득, 카멜리아 힐에서 약천사 가는 버스정류장에서 사투리가 매력적인, 고흐를 좋아하는, 하지만 비싸서 갈까 말까 고민하는 여학생 2명에게서 엿들었던 고흐 전이 생각났다. 말인즉슨, 고흐 전을 보러 편한 길을 두고 또 뚜벅뚜벅 찾아갔다는 말이다.

 

▲ 반고흐 인사이드 전

 

제주 컨벤션 센터 옆 금색의 돌하르방이 빛나는 호텔 지하에서 열린 '반 고흐 인사이드'는 새로운 전시회였다. 미디어와 반 고흐의 조화랄까.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그리고 과거의 반 고흐와의 조화. 여타의 전시회와 달리 신선할 수밖에 없었다. 아날로그라고 할 수 있는 예술에 디지털을 접목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만의 독특한 화풍은 꽤 좋아하는 편이었고, 비극적인 그의 인생사도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지만, 미디어를 통해 눈과 피부로 느끼는 오로지 반 고흐만을 알게 된 시간은 꽤 인상깊은 시간이었다. 마지막 기념품 가게의 직원이 펼치는 화려한 판매의 화술도 매우 인상 깊었다.

 

▲ 수학여행 때 질리도록 본 주상절리

 

지도를 보니 반고흐 인사이드 전 바로 뒤편에 대포 주상절리(2,000)가 있기에 절뚝이는 발을 끌고 갔다가 나오는 욕을 꾹 눌러 참았다. 이건 수학여행 때 본 바로 그 주상절리!! 깜빡하고 있었다. 굳이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한, 이 낯익은 감각. 2,000원을 날린 기분.

 

*31일째 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외국인 플리마켓에서 스님과 플리넬을 다시 만나서 공연을 관람하며 맥주를 마셨다....스님은 참 자유로운 직업이다. 제주도에는 성지순례가 참 많다. 절순례, 교회순례, 성당순례. 취향 존중이 아니라 종교 존중되겠다.

 

[마지막 후기. 제주도는 걸어도 걸어도 지치지 않는 섬이다. 바쁘게 걸을 필요 없이 천천히 걸어가면 낮은 건물들과 덩달아 낮게 자리한 하늘이 시시각각 변하는 모양새와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보면 언제나 마주하는 맑은 바다가 마음을 풍족하게 해준다.


ps.나머지 한 달은 새카맣게 타서 어디를 가도 현지인 취급을 받았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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