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을 뜻하는 '레퀴엠'은 모차르트, 베를리오즈, 브람스 등 잘 알려진 걸작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적이고 감동적인 진혼 미사곡으로 꼽히는 베르디의 레퀴엠 감상 및 강의가 열렸다.

▲최은규 음악칼럼니스트가 강의 및 해설을 진행하고 있다.

30일 광원아트홀에서 열린 부천필과 함께하는 고전음악 감상은 5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최은규 음악칼럼니스트의 강의와 해설, 그리고 베르디의 레퀴엠 감상으로 진행되었다.

레퀴엠이란 말 자체는 '안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본래 진혼 미사의 '입당송'인 "영원한 안식을 그들에게 주소서, 주님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의 첫 머리 단어에 해당하는 레퀴엠이라는 단어가 진혼 미사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변하게 된 것이다.

▲5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강의를 들었다.

많은 걸작 중에서도 베르디의 레퀴엠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지휘자이자 음악평론가인 한스 폰 뷜로우가 '성직자의 옷을 걸친 오페라'라고 평한 것 처럼 오페라와 같은 드라마틱한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 레퀴엠은 가톨릭 미사 전례에 따라 가기 때문에 극적인 내용은 별로 없다. 하지만 베르디는 무대장치나 줄거리 없이 아리아, 낭송풍의 서창, 이중합창과 무반주 합창의 특별한 음향, 최후 심판의 공포를 나타내는 북소리와 트럼펫의 울림 등을 통해 오페라를 방불케 하는 드라마틱한 음악으로 만들었다.

▲베르디

베르디가 레퀴엠을 작곡하게 된 것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 로시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 시초가 된다. 베르디는 로시니 서거에 큰 슬픔을 느끼고 서거 1주기에 맞춰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작곡가 11인이 레퀴엠 미사의 한 부분씩을 맡아 작곡해 이를 고인의 영전에 바치자는 제안을 했다. 그리고 베르디는 레퀴엠 미사의 마지막인 '저를 구원하소서'를 완성했으나 극장스케쥴과 오케스트라의 연습일정, 금전적인 문제 등으로 연주회가 좌절되어 '저를 구원하소서'도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몇 년 뒤 이탈리아 대문호 만초니의 부고를 들은 베르디는 1주기에 미사곡을 써서 바치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그리고 만초니의 1주기가 되는 날 밀라노의 성 마르코 성당에서 레퀴엠이 초연 되었고 대성황을 이루게 된다.

레퀴엠에서는 심판의 날을 알리는 금관악기와 지진 등을 표현하는 큰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베르디의 레퀴엠 중에서는 하늘과 땅, 무덤을 뚫고 울려나오는 나팔 소리, 공포의 대황, 불 속에 떨어진 사악한 자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 제 2곡 '분노의 날(Dies irae)이 가장 유명하며 이 후 작곡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베르디는 26편의 훌륭한 오페라를 남겼다. 그리고 베르디의 주요 오페라들은 지금도 가장 인기있는 작품들로 꼽힌다. 하지만 "베르디의 천재성이 집약되어 있는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단연 <레퀴엠>이다."라고 했던 음악학자 줄리안 버든의 말처럼 일반 관객의 흥미를 끌만한 자극적인 내용이 없는 레퀴엠을 오페라처럼 드라마틱하게 구성한 베르디의 레퀴엠은 오늘날까지 레퀴엠 중에서도 가장 자주 연주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