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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05/24  이계은 기자
5·18, 광주를 찾은 ‘부천사람들’
부천 ‘5.18광주역사기행’ 밀착취재

현대사에서 군사독재와 맞서 싸운 자부심의 역사인 5.18을 기억하기 위해 제정된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 올해로 33돌을 맞이했다. 하지만 5월 18일을 앞두고 각종 미디어에는 정부의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 거부 논란으로 시작해 종편의 ‘북한군 개입설’ 보도, 극우성향 사이트의 5.18 희생자 조롱으로 인한 논란을 싣는 기사가 넘쳐났고 그 과정에서 잊혀져가는 5.18정신을 회복해야 한다는 담론은 묻혀버리고 말았다. 대신 5.18항쟁의 진위여부를 의심하고 훼손하는 논란 속에서 ‘그 날’을 맞이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천지역 시민단체 ‘부천연대’와 인.부천보건의료노조는 광주의 역사적 현장을 직접 둘러보며 5.18정신을 기억하자는 취지로 지난 17일(금)~18일(토) 1박2일 일정의 ‘광주5.18역사기행(광주기행)’을 주최했다. 광주기행 참가자들은 올해 중학교에 입학해 갓 ‘초딩’ 딱지를 뗀 청소년부터 부천 소신여객 8번 노선을 운행하는 버스기사, 가톨릭대성모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노동자,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대학생까지 ‘부천’이라는 공통분모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세대별, 직업별로 다양한 시민들이었다.

 

기행은 첫날(17일) 광주에 도착해 항쟁이 주로 일어났던 금남로 일대를 둘러보고 둘째날(18일) 망월동의 5·18구묘역과 신묘역을 방문했으며, 항쟁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시민군에 참여했던 생존자 이덕준(52·당시 19세)씨의 안내로 진행돼 그날의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광주기행을 안내한 5.18 생존자 이덕준씨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그가 시민군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절친했던 친구의 죽음 때문이었다. 계엄군이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던 그는 마침내 계엄군의 총을 맞은 친구의 부고소식을 접한 뒤, 시민군에 참여해 끝까지 투항했다. 5·18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의 극중 강진우(이준기 역)는 바로 친구 전영진의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참가자 뒷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옛 전남도청. 도청이 철거된 이후 문화전당 공사가 한창이다.

 

하지만 항쟁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으며 최후의 항전지였던 상징적인 건물인 옛 전남도청은 철거되어 문화전당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기행에 참가한 청소년 김시연(17.상동)군은 “광주기행을 통해 항쟁 당시의 광주를 생생하게 느껴보고 싶었는데 최후의 항전지였던 옛 전남도청이 허물어지고 새 건물이 세워지고 있어서 허탈했다”며 아쉬워했다.

 

5.18 유족들을 비롯한 수많은 시민들이 도청건물을 허무는 것에 반대했지만 광주는 끝내 도청을 허물어버렸다. 시민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5.18의 상징인 도청을 허물었던 것은 국가권력에게는 부끄러운 치부 같은 공간이기 때문이었을까? 나치의 범죄를 반성하며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치 강제 수용소를 있는 그대로 보존해 박물관으로 만든 독일과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시민군이 계엄군에 맞서며 불렀던 노래 ‘진짜사나이’

시민군에 참여한 시민들은 당시 눈물을 흘리며 ‘진짜사나이’를 불렀다고 한다. 가사 중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지만... (산봉우리 해뜨고 질적에)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는 대목은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계엄군에 맞서 싸웠던 이유였다. 어린이와 임산부, 노인 가릴 것 없이 학살을 자행하는 계엄군이었다. 눈 앞에서 억울하게 친구, 애인, 가족을 잃은 시민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어야 했던 것이다.

 

▲옛 도청 앞 분수대는 그대로 남아있다. 분수대에 앉아 설명을 듣는 참가자들.

 

그런데도 종편의 일부 채널은 5.18을 앞두고 시민군에 대해 ‘북한군개입’을 증언하는 탈북자의 증언을 여과 없이 방송했다. 당시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진 문재학(당시 17세)군의 어머니 김길자(73)씨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5.18에 대한 왜곡을 접하고 “분통이 터져 아파 드러누웠다”고 말했다.

 

5.18 구묘역, 질박한 현재의 투쟁이 살아 숨쉬는 공간

기행 참가자들은 다음날(18일) 신묘역에 앞서 구묘역을 먼저 찾았다. 지난 1997년 국가주도로 웅장하게 조성된 신묘역(국립5.18묘지)에 비교하면 초라해 보이는 구묘역은 1980년 이후 5.18정신을 이어받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통일운동에 헌신하며 산화해간 열사들이 안장되어 있는 민족민주열사묘역이다. 이곳에는 우리에게 낯익은 이한열 열사, 강경대 열사, 김남주 시인 등 군사독재정권의 악랄한 탄압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위해 투신한 열사들이 모셔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5.18기념식 등 공식적인 행사가 열릴 때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신묘역 만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구묘역이야말로 현대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는 곳으로 신묘역과 함께 꼭 방문해야할 중요한 공간인 셈이다.

 

▲이덕준씨의 안내에 따라 구묘역을 둘러보는 참가자들.

 

기행에 참여한 한 참가자는 망월동을 “민주화의 혼이 살아있는 곳, 죽은 자들이 묻혀있는 묘역이지만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아이러니한 곳”이라며 “5.18당시 사망했던 사람, 5.18을 알리기 위해 죽어갔던 사람 그 모두의 역사를 기억하고 널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말했다.

 

▲구묘역에 안장되어 있는 이한열 열사의 기념비.

 

5.18생존자 이덕준씨는 기행을 안내하며 “1980년 당시 항쟁에 참여했던 시민들은 우리와 동시대인이며, 5.18은 33년 전의 끝나버린 역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당시 그들이 겪었던 분단과 예속이 여전히 계속되는 한 5.18의 과제는 남아있다”며 “5.18이 억압의 현대사에 민중의 힘을 보여주는 희망을 주는 사건이었듯이, 현재의 역사에서 희망을 만들어나갈 것”을 강조했다.

 

스무 살 이후 10년 만에 망월동을 찾았다는 참가자 오상헌(30·중동)씨는 “기행에 참여하니 역사를 공부하면서 사회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스무 살 때의 초심이 생각났다”며 “그동안 현실에 치여 잊고 살았던 역사에 대해 오랜만에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또 올해 대학에 입학한 민선영(20·인천)씨는 “광주에 직접 와서 보고 들으니 최근 종편이나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5.18에 대한 왜곡은 역사인식이 부족해서인 것 같다”며 “우리가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갖기 위해서는 나부터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30명 남짓의 부천시민들이 참여한 이번 광주기행은 5.18을 기억하는 기성세대에게는 5.18의 과제를 떠올리는 초심을 찾는 기회로, 역사교육이 부재한 시대의 젊은세대에게는 잊혀져가는 5.18정신을 자각하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 내년 5월 18일에는 광주를 찾는 부천시민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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