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과 재건축은 낡은 주택을 허물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조성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새로운 주택을 공급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노후한 도시를 다시 만들고 부족한 주택을 늘린다는 점에서 정비사업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비사업에는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역설이 있다. 새 집을 짓기 위해 기존 집을 먼저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정비사업이 본격화되면 주민들은 이주를 시작하고 기존 주택은 철거된다. 하지만 새 아파트가 완공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결국 새 주택이 시장에 나오기 전까지 기존 주택이 먼저 사라지는 시간이 발생한다.
주택 공급은 일시적으로 줄어드는데 이주민들은 새로운 집을 찾아야 한다. 한 지역에서 정비사업이 한꺼번에 진행되면 전·월세를 구하려는 수요가 단기간에 몰릴 수밖에 없다. 주택 여유가 충분하지 않은 지역이라면 전·월세 가격이 오르고, 이는 다시 매매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부천처럼 원도심 곳곳에서 재개발과 재건축이 활발하게 추진되는 도시에서는 이 문제를 더욱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비사업이 완료되면 주택 공급이 늘어나지만, 그 과정에서 기존 주민들이 한꺼번에 새로운 거처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주변 지역에서 원하는 집을 구하지 못한 주민들이 인근 도시로 거처를 옮기는 상황도 나타날 수 있다.
이제 정비사업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주로 ‘사업이 끝난 뒤 몇 가구의 새 주택이 공급되는가’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새 집이 완공될 때까지 기존 주민들은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사업 초기부터 함께 던져야 한다.
해법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이주대책을 정비사업의 부수적인 절차가 아니라 핵심 사업계획으로 격상해야 한다.
정비사업 승인 단계부터 철거로 인해 몇 가구가 이주해야 하는지, 이들이 어느 지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는지, 인근 지역의 전·월세 물량은 충분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특히 여러 정비사업이 동시에 추진되는 지역이라면 사업 시기를 적절히 조정할 필요가 있다. 특정 시기에 대규모 주택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을 막고, 주택 공급의 공백을 분산해야 한다.
둘째, 이주용 주택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
정비사업이 시작된 뒤 주민들이 각자 알아서 거처를 찾도록 내버려두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공공이 보유한 임대주택을 활용하거나 필요한 경우 이주용 임대주택을 별도로 확보해 주민들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이주민을 돕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대규모 이주 수요가 주변 전·월세 시장으로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을 막는 주택시장 안정 대책이기도 하다.
부천처럼 개발할 수 있는 토지가 제한적인 도시라면 더욱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도심 안에서 활용 가능한 공공 토지를 찾아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장기적으로는 개발 가능한 토지를 공공이 확보해 장기 임대주택 공급 기반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개발제한구역 활용 역시 신중하게 검토할 수 있는 선택지 가운데 하나다. 물론 모든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자는 뜻은 아니다. 환경적 가치가 높거나 도시 확산을 막기 위해 보존해야 할 지역은 당연히 지켜야 한다.
다만 보존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교통과 생활 기반시설을 갖추기 쉬운 지역 가운데 주택 공급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공공주택 공급을 위한 토지로 활용할 수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주택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필요한 곳에서, 안정적으로 오래 살 수 있는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다.
셋째, 정비사업과 공공주택 공급을 하나의 주택 수급 계획으로 묶어야 한다.
지금처럼 집을 허무는 계획과 새 집을 공급하는 계획을 따로 세워서는 안 된다. 정비사업으로 주택이 사라지는 시점을 미리 파악하고, 그에 맞춰 주변 지역에 공공임대주택 등을 선제적으로 공급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가령 특정 지역에서 몇 년 뒤 대규모 철거가 예정돼 있다면 그보다 앞서 인근 지역에 장기 임대주택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주민들이 한꺼번에 민간 전·월세 시장으로 몰리는 것을 줄일 수 있고, 전·월세 시장의 불안이 매매시장으로 번지는 것도 완화할 수 있다.
물론 최근의 집값과 전셋값 상승을 모두 재개발과 재건축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금리와 대출, 인구 구조, 소득, 투자 수요, 신규 입주 물량 등 다양한 요인이 주택시장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정비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철거와 입주 사이의 시간 차이’는 분명히 주목해야 할 변수다.
집을 허무는 순간 주택은 사라지지만 새 집은 그 즉시 생기지 않는다. 이 간극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정비사업이 지역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주택정책의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5년 뒤 몇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5년 동안 기존 주민들이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지, 이주 수요를 어느 지역에서 받아낼 것인지, 주변 전·월세 시장의 충격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까지 함께 계획해야 한다.
결국 재개발과 재건축의 성공은 새 아파트가 얼마나 많이 들어섰느냐만으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 사업 과정에서 기존 주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주거 불안을 겪지는 않았는지, 삶의 터전을 원치 않게 떠나야 하는 주민은 없었는지, 정비사업으로 인한 주택 공급의 공백을 공공이 얼마나 잘 메웠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도시를 다시 만드는 일은 건물을 다시 짓는 것만이 아니다. 그곳에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이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새 집을 짓기 위해 기존 집을 허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갈 곳을 잃는 것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제 정비사업에 대한 주택정책은 완공 이후가 아니라 철거하는 순간부터 시작돼야 한다.
집을 얼마나 많이 지을 것인가만큼 중요한 것은, 집을 짓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어디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할 것인가다.
그것이 재개발과 재건축이 단순한 건축사업을 넘어 진정한 도시재생으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