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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극장가는 코로나 19라는 검은 천에 가려졌다. 영화관에는 관객이 없었고, 개봉을 준비하던 영화들은 하나둘 지연 소식을 알렸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영화를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영화관 H 열 대신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켰고, 다양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국내외 작품을 즐겼다.
하지만 그래도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만 할까? 검붉은 좌석, 짙은 어둠, 영화 시작 전 설렘은 집으로는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다. 2021년은 코로나 극복의 해로 기록될 것이고, 극장은 다시 붐비게 될 것이다. 그때를 기다리며 극장 개봉작 중 볼만한 영화를 부천시민에게 추천하고자 한다.
원더우먼 1984
미국/ DC/ 히어로물/ 패티 젠킨스
갤 가돗, 크리스 파인, 크리스틴 위그, 페드로 파스칼
▲ 영화 <원더우먼 1984>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1월 1, 2주차 선정 영화는《원더우먼 1984》이다. 코로나 상황에 지친 시민들에게 보는 재미에 희망과 감동까지 줄 수 있는 작품이라 선정했다.
《원더우먼 1984》는 2017년에 개봉한 《원더우먼》의 후속작이자 DC 확장 유니버스 8번째 작품이다. 전작은 다이애나 프린스에서 원더우먼이 되는 다이애나의 '성장'을 담았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영웅'으로 세상을 구하는 모습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감독은 전작에 이어 메가폰을 잡고 있는 '패티 젠킨스'이고, 음악은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작곡가 '한스짐머'가 담당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사랑하는 연인 '스티브 트레버'를 잃은 원더우먼 다이애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체를 숨긴 채 조용히 고고학자로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죽은 트레버가 돌아오게 되고 꿈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세상의 혼돈과 갈등이 트레버를 살려낸 드림스톤 때문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드림스톤은 이미 석유 사업가 맥스 로드 손에 들어간 후였고, 맥스로드는 사람들의 소원을 이뤄주며 욕망을 채웠다. 소원은 대가가 따르기에 사람들의 소원이 실현되자 세상은 급속하게 무너져내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해야만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다이애나는 갈등한다. 결국, 유일한 소원이었던 트레버를 포기하고 욕망의 화신이 된 맥스 로드를 막아 세상을 구한다.
스토리는 전형적인 히어로 영화 같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다른 히어로 영화와 구분되는 점이 있다.
첫째는 시대적 배경, 1984년 레트로다.
▲ 영화 <원더우먼 1984>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원더우먼 1984》라는 제목처럼 1980년대 자본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쇼핑몰, 컬러TV, 우주선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문화와 새로움이 넘쳐나는 모습이 드러난다. 사람들도 한껏 치켜세워진 파워솔더와 컬러풀한 의상, 멋지게 신은 나이키에서 풍요의 시대를 엿볼 수 있다. 극 중에 사용된 음악도 1980년대를 풍미한 뉴웨이브 음악을 사용해 보는 이로 하여금 당시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여기에 전편 《원더우먼》에서 트레버 대위가 인간 세상에 처음 나온 다이애나에게 1910년대를 소개해주는 장면과 오버랩되며 과거지만 미래의 모습처럼 느끼게 하는 모습이 교차한다.
둘째는 동질감이 느껴지는 빌런이다.
▲ 영화 <원더우먼 1984>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빌런'으로 등장한 맥스 로드 (페드로 파스칼 분)는 실패한 석유 사업가다. 그는 다른 히어로 영화에 등장하는 빌런처럼 '세상을 파멸시키기 위한' 빌런이 아니다. 우리도 한 번쯤 꿈꿔왔을 '성공'이라는 욕망에 물들어 빌런이 된다. 풍요의 사회에서 더 가지지 못해 발버둥 치는 우리의 모습이야말로 세상을 망치는 빌런임을 보게 된다. 여기에 페드로 파스칼의 연기는 내가 맥스로드가 된 것 같은 몰입감을 선사하여 보는 사람이 두려움마저 느끼게 한다.
또 다른 '빌런' 바바라 역시 더 멋진 삶을 사는 사람에 대한 열등감을 소원으로 없앤다. 원더우먼처럼 되고 싶다는 소원이 이루어진 바바라는 맥스 로드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원더우먼을 저지하며,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는 세상과 타인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더 큰 힘과 더 큰 욕망에 사로잡히며 사람의 모습을 잃고 치타의 모습을 한 빌런이 되어 원더우먼과 결전을 치른다.
셋째는 교훈과 희망의 메시지다.
▲ 영화 <원더우먼 1984>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원더우먼은 '인간의 가치'를 믿는 영웅이다. 그 때문일까? 이번 영화에서 액션 영화나, 히어로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화려하고 멋진 액션은 부족하다. 대신 히어로를 빙자해 자신의 잔혹함을 악당에게 푸는 여타 영웅들과 달리, 전투에서도 상대방의 목숨을 챙기고, 위험한 아이를 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내내 사람에 대한 사랑과 헌신, 믿음, 희생을 보여주며, 요행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는 교훈을 보여준다.
그 때문에 현대 히어로 영화에서 등장하는 화려한 액션 장면과 통쾌한 복수극은 없지만,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정의, 희생, 사랑"을 강조한다. 영화 후반부에서도 빌런을 무찌르는 방법이 '설득'이라는 점에서 이는 극대화 된다.
아쉬운 부분
▲ 영화 <원더우먼 1984>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영화의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상영 시간은 2시간 31분으로 꽤 긴 편이다. 불필요한 장면은 조금 더 잘라내고, 서사가 필요한 부분을 조금 더 강조했다면 개연성 부분에서 불편함이 없는 영화가 되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원더우먼의 애인으로 등장한 스티브 트레버의 역할이 원더우먼의 욕망이라는 장치를 위해 별다른 역할 없이 희생된 부분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리뷰를 마치며
그럼에도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는 지금, 영화가 전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 "끝없는 욕망의 대가", "풍요 속 파멸" 등 세계에 전하는 위로와 교훈만으로도 충분히 영화를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욕망이라는 빌런 앞에 우리는 어떨까? 이번 새해 소원은 각 개인의 욕망 대신 세상을 위해 양보하자. 대신 가진 것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우리 집 원더우먼은 우리 자신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