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김만수 시장이 우리 부천시민들은 스스로를 ‘부천시민’이라고 자각하는 도시통합력이 높다는 인터뷰 기사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연 시민들도 시장과 같은 생각일까?

얼마 전 부천역 근처 술집에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부천에 소재한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자취를 시작했고, 벌써 5년째 소사동에 살고 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부천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부모님이 갑작스레 친구더러 소사동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부천에 사는 부모님 지인분들 말씀이, 소사동이 ‘부천에서 가장 가난하고 못사는 동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말에 자존심 상하신 부모님은 이사를 권유했을 터다.

나는 조금 놀랐다. 부천에도 물론 집값이 높은 동네와 저렴한 동네 사이에 위화감이 존재한다는 건 느껴왔지만, 특정 지역을 두고 ‘못사는 동네’라며 비하하고 낙인찍는 분위기가 있다는 건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는 서울에나 있을 줄로 알았던 건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걸까. 가난한 사람이 사는 달동네와 고층빌딩 숲이 펼쳐진 강남 대도심이 어색하게 공존하는 서울처럼, 부천 역시 두 가지 상반된 풍경이 공존하고 있었다. 게다가 구도심 주민과 신도심 주민들은 서로에 대한 부러움과 박탈감, 혹은 우월감과 자부심을 느끼며 분열되어 있었다. 이러고도 부천시민이 도시통합력이 높다는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몇 달 전 개봉한 영화 <돈크라이마미>에서도 부천의 상반된 풍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부천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시작부터 부천시청을 비롯한 신도심의 풍경들을 화면가득 보여준다. 시에서 영화제작을 지원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발전되고 깨끗한 부천의 풍경들이 상영되는 내내 비춰졌다.

▲부천을 배경으로 미성년자 성폭행 문제를 다룬 <돈크라이마미(2012)>

영화의 주인공 청소년이 사는 곳은 신도심인 상동 어딘가에 있을법한 깨끗한 아파트다. 그러나 주인공이 불행히도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하는 장소는 구도심의 허름한 아파트였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그곳이 어딘지 알 것만 같았다. 소사동이나 고강동을 지나다보면 슬럼가를 연상시키는 아파트가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결국 부천의 불균형적인 발전상을 선(신도심에 사는 피해자)과 악(구도심에 사는 가해자)으로 대비한다. 이 표현방식은 식상하지만 효과적이다. 누구나 성폭행 범죄가 일어날 만한 장소로는 곳곳에 CCTV가 잘 갖춰진 신도심보다는 인적 드물고 어두운 분위기의 구도심을 연상시킬 것이다.

그런데 친구는 구도심에 살아서 느끼는 위화감은 결정적으로 주거환경이 아니라 ‘주변환경’에서 온다고 말했다. 다세대 주택이라 집 천장이 어딘가 기울어져 있고 볕이 잘 들지 않는 불편함은 감수하더라도, 집을 나서면 펼쳐진 환경들이야말로 구도심과 원도심의 불균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는 신도심에 잘 갖춰져 있는 자전거 도로를 부러워했다. 소사동은 자전거를 타기에는 전용도로가 없어 위험하고 행인들에게는 민폐까지 끼칠 정도로 열악하다. 이를 볼때, 신도심과 구도심의 격차는 단순히 ‘어떤 건물이 들어서있는가’에서 좌우되는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시민들이 혜택 받을 수 있는 복지공간이 얼마나 근접해 있는가이다.

▲부천시청 앞 길주로 전경(출처: 부천시청 홈페이지)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 주변 환경이 좋아지는 건 당연하다. 주차장도 확보해야 하고, 도로도 새롭게 깔고 수요자를 겨냥한 상권도 자연스레 조성될 것이다.

그렇다고 부천 전체를 재개발해서 신도심으로 탈바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 뉴타운 사업을 통해 완벽하게 실패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도심을 '살 만한 곳'으로 바꾸는 일은 전적으로 지방정부의 의지에 달린 셈이다. 부천시는 당장에 문화·복지 시설들을 구도심에 균형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만수 시장이 올해 부천시의 주력사업으로 ‘원도심 활력증진’을 제시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주거환경이 삶의 질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신·구도심 불균형 발전으로 생겨난 주거불평등은 곧 삶의 질에 있어서의 양극화를 의미하기에 심각한 문제다.

부천시의 원도심 활력증진 정책이 주거양극화로 분열된 부천시민의 고충을 덜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