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고 임해진 소장

대한민국정부수립 100주년 역사적인 2019년 7월의 마지막 주를 학생들과 함께 블라디보스톡에서 보내게 되었다.

25일, 보훈처의 지원을 받아 사단법인 대한해협전승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하고 선인역사문화연구소에서 후원하는 청소년 국외 역사탐방의 안전담당(휴고 소장 임혜진)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떠났다.

떠나기 전 계획했던 일들에 차질이 생겨서 이번 탐방을 포기할까 하는 고민도 했지만 나 혼자만의 약속이 아니기에 약간의 무거운 마음을 가슴 한 켠에 넣어두고 출발했다. 공항에서 우리 탐방대원을과 만나니 앞으로 5일간의 내 역할이 더 무겁게 다가왔다. 설렘을 가진 21명의 아이들이 지금의 모습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이 공항에서 헤어지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졌다.

녹색의 상큼한 러시아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로 향했다. 러시아는 처음 가는 곳이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블로그와 유튜브, SNS의 내용들을 모두 숙지했기에 블라디보스톡 공항에 내리자 낯설기보다는 오히려 정겨움이 느껴졌다.

신한촌비 앞에서 기념촬령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 러시아가 아닌 소련을 배웠던 나이의 사람들에게 러시아는 언제나 동토의 왕국, 보드카와 얼음, 곰과 털모자를 쓴 사람들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을 간다고 했을 때 어떤 패딩잠바를 꺼내야 할까 고민을 했었다. 다행히 인터넷이란 편리한 서비스를 통해 그렇게 덥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나서도 그래도? 하는 마음을 가진 건 어릴 때 너무나 열심히 배웠던 교육의 탓일지도 모른다.

블라디보스톡공항에 내리니 뿌연 안개와 바람이 우리를 맞이했다. 여행 중에 안개와 비바람을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아마도 대부분은 짜증을 내거나 잘못 왔다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하지만 왜 그랬을까. 이 여행의 목적이 남달라서 그랬을까. 버스를 타고 가면서 가이드가 내일까지 비가 온다는 말에 왠지 기분이 뭉클했다. 비와 안개가 우리 여행의 목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는 블라디보스톡의 유명한 아르바트 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지무트호텔에 짐을 풀었다. 커텐 사이로 바로 바다가 보였다. 깨끗하고, 모던한 분위기라고해야 할까? 그런데 왠지 우리나라에 있는 호텔 느낌? 호텔에서 일하시는 분들 빼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한국인과 중국인들이었다. 이런 이 느낌적인 느낌은 뭘까? 여기 러시아잖아. 블라디보스톡.... 그런데 왜 한국같은 느낌이... 불행히도 이 느낌은 5일 내내 다르지 않았다.

2일차 아침, 어제와 같이 해무가 태양의 빛을 감추고, 보슬비는 축축히 내려 우리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호텔의 아침을 먹으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미각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일반적인 음식은 너무나 싱겁고, 베이컨은 너무나 짜고... 예상했던 것처럼 저절로 다이어트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첫 번째 일정은 "신한촌" 이었다. 일본의 박해를 피해, 우리의 독립운동을 위해 우리 선조들은 우리 땅을 등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를 했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끼리 유대감을 가지고 마을을 이루며 독립의 꿈을 꾸고 있을 때 러시아는 페스트가 유행하는 것을 이유로 우리 민족을 척박한 땅으로 이주를 시켰다. 그들이 새롭게 정착한 곳이다.

새롭게 옮긴 곳에서 우리 선조들은 촌락을 이루고, 학교를 만들고, 독립운동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우리민족은 척박한 땅에서도 이겨내고 잘 살아간다. 마을 이름도 새로운 한국인들이 모여 산다고 하여 "신한촌"이다. 이곳에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일본과 싸우기 위해 마음을 모아 준비를 하였다.

이범윤, 홍범도의 의병장들과 헤이그 특사인 이상설, 이위종, 신민회를 조직한 안창호선생님까지 모두 이곳에서 항일 의지를 불태웠다. 뿐만아니라 안중근의사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최재형선생님도 이곳에서 거주하며 독립의 열정으로 우리 민족의 투지를 보여주었던 곳이었다. 신한촌은 독립운동의 집결지가 되었다. 러시아 영토였으나 우리 민족의 마음과 열정으로 작은 독립된 대한민국을 만들었던 곳이다.

신한촌비 돌아가면서 헌화

신한촌에서 우리 조국의 독립을 꿈을 꾸었지만 격변하는 러시아의 혁명은 우리의 염원을 외면하였다. 1920년 4월 참변과 1937년 스탈린의 대탄압으로 한인들은 또 다시 강제이주를 당했다. 그렇게 신한촌은 역사속에서 잊혀져 갔다. 1999년 8월 15일 사단법인 해외한민족연구소에서 한인들의 역사와 독립운동을 선양하기 위해 기념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고 1999년 지금의 자리에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는 3개의 큰 기둥과 8개의 작은 돌들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큰 가운데 기둥은 대한민국을, 오른 쪽 기둥은 고려인들을, 왼쪽 기둥은 북한의 인구수를 의미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8도를 의미하는 8개의 돌들은 한국인, 고려인, 북한인의 통합된 하나의 장을 만들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이 익숙한 아이들에게 북한을 의미하는 비석은 별 감흥이 없지만 어린 시절 매년 반공 포서트와 반공 글짓기를 했던 나에게는 그 기념비들이 매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렇지. 맞아. 북한도 우리 민족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북한은 우리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처럼 생각하고 거부할 때가 있었다. 특히 공산당이라는 말은 나도 모르는 거부감을 어쩔 수 없이 불러온다. 대학원을 다닐 때 중국에서 온 유학생들과 뒷풀이를 했었다. 그 중 나와 같은 공부를 하는 친구가 중국에서 공산당 당원이라 선생님도 공산당 당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말을 했다. 순간 찬물을 뒤집어 쓰듯 그 곳이 조용해 졌다. 공산당이라고?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공산당? 북한식 공산당에 익숙했기에 그때의 놀람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신한촌에서 헌화를 하고 그 8개의 돌들을 보면서, 흩뿌려지는 안개 비를 맞으며 왠지 모를 벅찬 마음과 쓸쓸함을 가지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한편 이번 여행의 (TMI) 가이드인 욜라(여) 선생은 발음이 너무나 정확해서 부모님 중에 한국분이 계신 줄 알았다. 한국에는 3번 여행을 하셨다고. 여행에서 가이드를 잘 만나는 것도 행운인데 너무 좋으셨다. 인스타그램 #roshiankkoma.reporter #러시안꼬마블라디보스톡

신한촌비

첫날 공항에서

러시아 욜라 가이드